
설교일-140406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이사야 35:10
제목-하나님 나라
♣ 무한한 복음적 복
본문은 메시야의 강림으로 임하게 될 영육의 회복을 예언한 것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구원의 길의 성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구원이 가져온 변화를 영혼에만 제한시키는 일은 옳지 못합니다. 영과 육에 관련된 모든 일이 진실 되고 성실하게 하나님 앞에서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육신의 세속된 일이라 제쳐 놓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선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애써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신자들에게는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보다는 세상을 더 원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이 말씀은 여러분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원하는 사람들은 세상은 더럽고 악하고 썩어지고 사라질 나라로 보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싫을 때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즉, 세상이 싫은 사람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소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좋은데 무엇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겠습니다.
결국 세상도 좋고 천국도 좋다는 것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좋은 곳에서만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인 것입니다.
이 욕망을 누가 말리겠습니까? 아무도 못 말릴 욕망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살아가십니까?
여러분들의 마음이 세상에 대하여 싫어지고 대신 하나님 나라로 물들어 갈 때 오늘의 말씀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될 것입니다.
예화-톨스토이의 "바보 이반" 이야기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Leo N. Tolstoi)는 인생 말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바보이반' 이란 단편에서 기독교적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시골에 부유한 농부 가정에 삼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큰 형은 군인이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둘째는 사업가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막내의 이름이 이반인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땀을 흘리는 성실한 농부로 살고자 했습니다.
결국 큰 형은 군인이 되었는데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습니다.
둘째 형도 사업가가 되어서 오로지 돈을 모으고자 하는 일념으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형들은 그저 농사밖에 모르는 동생 이반을 바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형들은 가지고 있던 명예와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하여 동원했던 부정한 방법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올무가 된 것입니다.
빈 털털이가 된 형들이 고향에서 일하는 동생을 찾아와 먹을 것이라도 얻을 수 있는가 말할 때
이반은 기쁘게 형들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형들을 받아들이는 조건을 하나 붙입니다.
“형들이 떠나고 난 후 우리 가정에 한 가지 규칙이 생겼습니다.
아무리 형들이라고 해도 먹을 것을 얻으려면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규칙은 일을 많이 해서 손에 굳은살이 배긴 사람이
식탁의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일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 손에 굳은살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 규칙만은 꼭 지키셔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톨스토이는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심은 대로 거두며 일한만큼 보응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는 진리입니다.-http://cafe.daum.net/yacop
하나님의 나라는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의 것은 다 부숴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다시 만드시는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 이전의 말씀을 보면 무엇이 무엇으로 된다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광야, 메마른 땅, 사막이 나오고,
3절에 약한 손, 떨리는 무릎,
4절에 겁내는 자,
5절에 소경, 귀머거리,
6절에 저는 자, 벙어리 혀,
7절에 뜨거운 사막, 메마른 땅, 시랑,
8절에 깨끗지 못한 자, 우매한 행인,
9절에 사자, 사나운 짐승,
10절에 슬픔, 탄식, 이런 표현들이 나오는데 이 표현은 죄와 저주 아래 있는 세상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바꿔 놓으시겠다고 합니까?
1절에 기쁨, 백합화, 즐거움,
2절에 기쁜 노래, 레바논 영광, 사론의 아름다움, 하나님의 아름다움,
5절에 눈이 밝아지고 귀가 열리고,
6절에 사슴같이 뛰고 혀가 노래하고,
이렇게 계속해서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바꾸시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상태를 완전히 뒤바꿔서 만들어지는 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화-얘들아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나자.
로마에 카타콤(Catacomb)이란 성지가 있습니다.
초대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지하의 공동묘지에서 예배를 드리며 믿음을 지키던 장소입니다.
한 번은 로마 군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워낙 미로여서 입구에 있던 교인들만 잡혔습니다.
로마당국은 카타콤에 있는 교인들에게 경고를 주려고 이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입구에 세웠습니다.
깊은 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어린 자녀들이 십자가 밑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 십자가에 달린 부모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얘들아, 예수 믿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너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믿음을 버리지 말아라.
예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이다.
얘들아,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나자."
초대교회 순교사에 나오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http://cafe.daum.net/yacop
여러분, 이 날, 이 나라가 그리워지지 않습니까?
죄가 없는 깨끗한 나라가 기다려지지 않습니까?
깨끗한 나라를 그리워하며 사는 사람은 세상의 죄에 대해서 탄식하며 살아갑니다.
환경이 나빠서 살기가 힘들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죄에 매여 있고 피조물의 자리에서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한숨 쉬며 사는 것입니다.
또 그런 여러분 때문에 이웃이 피해를 입습니다.
그럴 때 한숨 쉬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이것은 전부 내 죄 때문입니다. 속히 나를 죄 없는 나라로 데려가 주소서”하면서 살 때 하나님의 복수하실 날이 기다려지고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수고와 눈물은 모두 내 죄 때문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죄 없는 나라를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죄 없는 나라를 생각할 때 자신의 죄에 대해서 미워하게 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면서 주님이 우리를 구속하실 날을 바라볼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날에 거룩한 길을 지나서 시온에 이르고 영영한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 것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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