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일-140202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요한복음14:1
제목-주를 신뢰하지 못하는 믿음
♣ 처소를 예비하러 가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또 자기를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영원히 떠나가시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다가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게 될 하나님 아버지의 집 천국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는 것은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써 믿는 자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예수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악속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근심과 고통이 있습니까?
나 자신과 문제와 상황에서 잠시 눈을 떼고 멀리 천국을 바라봅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모든 물건에는 크고 작음의 차이가 있는데 크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아주 큼에도 불구하고 값이 거의 나가지 않는 데 반해 어떤 것은 아주 작은데도 비싼 값에 팔립니다.
흔한 돌멩이 한 트럭과 1캐럿짜리의 다이아몬드는 크기나 양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지만 작은 것이 훨씬 더 비쌉니다.
하지만 커야 좋은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마음 씀씀이도 커야 하고, 믿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커야 주의 인정을 받게 되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적은 믿음에는 책망이 따릅니다.
예수님께서는“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오늘 이 시간에는 역설적으로 “주를 신뢰하지 못하는 믿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화-기도하는 원숭이
영국의 유명한 청교도 정치가 크롬웰 (Oliver Cromwell)의 일화입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유모가 키웠습니다.
한 번은 유모가 그를 데리고 할아버지 집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원숭이 몇 마리를 키웠습니다.
유모가 크롬웰을 안고 젖을 먹이자 원숭이가 물끄러미 쳐다보더랍니다.
젖을 먹이던 유모가 잠깐 아기를 내려놓은 사이에 원숭이가 아기를 안아봅니다.
그리고 아기를 안고는 지붕 위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지붕 위로 쫓아가도 원숭이는 다른 곳으로 뛰어버립니다.
만약 놓쳐버리면 아기는 죽게 됩니다.
그때 믿음이 좋은 크롬웰의 할아버지가 가족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제 크롬웰은 우리의 손을 떠났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수밖에 없다.
함께 기도하자.”
무릎을 꿇고 가족들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원숭이가 가만히 그들을 쳐다봅니다.
흉내 내기를 좋아하는 원숭이는 아기를 안은 채 내려와서 같이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크롬웰을 내려놓았습니다.-http://cafe.daum.net/yacop
1. 입술로만 고백하는 신앙
입술에서 나오는 신앙 고백만 가지고서 각 사람의 신앙을 평가한다면 아마도 A학점짜리 성도들이 상당수에 이를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역하실 당시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았거니와 지금도 부지기수에 달하는 게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신앙을 평가하는 기준은 고백이 아니라 열매입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생활이라는 열매가 뒷받침이 될 때에 그의 고백은 가치가 있으며 칭찬 받는 성도가 됩니다.
다수의 신자들이 훌륭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음에도 믿음이 적은 자로 분류가 되는 까닭은 신뢰감이 없는 탓입니다.
주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므로 염려하고, 걱정하고 좌절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회개할 일들입니다.
예화-지나친 죄책감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을 할 때 생긴 일입니다.
서재에 있는 루터에게 나타난 마귀는 종이 한 장을 던졌습니다.
그 종이에는 루터가 범한 죄의 목록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순간 루터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 종이에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과거의 부끄러운 죄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루터에게 협박을했습니다.
"이렇게 죄가 많은 네가 무슨 종교개혁을 한다고?
너나 바르게 살아라! 이제 너의 죄를 어떻게 할래?"
그러자 마틴 루터는 할 말이 없어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 옵니다.
"루터야! 너의 모든 죄는 나의 피로 모두 깨끗이 씻었다.
그러므로 너를 정죄할 자는 아무도 없다"
루터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마귀가 나타났던 벽을 향하여 잉크병을 집어던지면서 외쳤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누가 나를 정죄하겠느냐?"
루터가 크게 소리치는 순간 마귀는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회개케하시며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령에 평안을 선물 하시거니와 마귀는 지나친 죄책감으로
우리의 심령에 시험이 들게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우리의 믿음을 흔들리게 합니다.
지나친 죄책감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http://cafe.daum.net/yacop
2. 강하고 담대하지 못한 신앙
여호수아가 주님의 명하심을 좇아 요단을 향해 나아갈 때는 상황이 썩 좋지가 못했습니다.
그때의 요단은 물이 언덕에 넘칠 정도로 많은 시기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의 말씀을 좇아 모험을 감행했으므로 위대한 기록을 역사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요단을 건너는 일이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는 힘든 과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강 건너에는 적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 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도하를 강행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부지기수에 달합니다.
상당히 이성적인 이들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신뢰하는 자는 여호수아처럼 무모해 보이는 일들에 도전합니다.
일을 주관하시는 이를 알기 때문입니다.
적은 믿음을 가진 것은 자랑거리가 못됩니다.
그것은 인정받지 못하는 믿음이요, 역사를 기대하기 힘든 믿음이기에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도 못합니다.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적은 믿음이 큰 믿음으로 바뀌게 해야 합니다.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도록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적은 믿음에는 책망이 따를 뿐입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