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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과 나오미
표세철목사 2016-05-08 추천 0 댓글 0 조회 464
[성경본문] 룻기2:17-23 개역한글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모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모에게 드리매

19. 시모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이 누구에게서 일한 것을 시모에게 알게 하여 가로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20.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

21. 모압 여인 룻이 가로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22. 나오미가 자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http://blog.daum.net/pyo9191/7087134

 

160508어버이주일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룻기 2:17-23

제목-룻과 나오미

룻의 이야기는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다. 고난을 헤쳐 나가는 여인 룻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룻과 보아스의 사랑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시어머니 나오미의 넓은 아량이 감동적이다. 룻과 나오미의 가정을 살리려는 보아스의 사랑이 감동적이다. 역경이 지난 뒤 해피 엔딩이 감동적이다. 짧은 이야기 속에 수많은 감동이 들어있다. 감동의 종류가 여러 가지이듯이 감동의 크기도 여러 가지이다. 코끝이 찡할 정도의 잔잔한 감동이 있는가 하면 가슴이 벅찰 정도의 큰 감동도 있다. 룻기는 이야기 자체로 한편의 아름다운 문학 작품이다. 동시에 역사적 의미와 영적 의미가 담겨 있다(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와 부모는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 오늘 본문은 모압 여인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보리 이삭을 주울 때였다. 보아스의 보이지 않는 배려로 룻이 제법 많은 보리 이삭을 주웠다. 룻이 그것을 가지고 시어머니에게 보여 드렸다. 시어머니는 약간은 넉넉한 보리를 보고 신기한 듯이 자초지종을 묻는다. 룻이 그간의 경위를 상세하게 대답한다. 룻과 시어머니 사이에 친밀한 대화가 오고 간다. 비록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 있지만 고부 사이의 대화 속에 잔잔한 사랑과 배려가 담겨 있다. 비록 남의 것을 주어 먹는 처지이지만 고부 사이에 평안한 분위기가 흐른다.

1. 룻이 일하러 나섰다.

룻의 가정에는 남자가 없다. 남자들이 모두 먼저 죽었기 때문이다. 한번 상상해 보라. 남자는 없고 여성만 있는 가정이 얼마나 힘들게 살겠는가? 고대 시대에 남성은 노동력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진다. 게다가 남성은 가정을 대표한다. 가정의 대표자가 없으니 무시당할 수도 있다. 돈이 없어 어렵고, 배고픈 설움은 참을 수 있겠으나 무시당하는 설움은 참기 어렵다. 게다가 룻은 이방여인이니 무시당할 확률이 더 많다. 무시당하다 보면 위축되기 쉽다. 사람들과 가까이 하려 들지 않는다. 스스로 고립되어 간다. 아무도 자기를 가까이 하지 않으며, 세상에 자기 혼자만 외롭게 산다는 느낌을 가진다. 일종의 우울증 현상이 오는 것이다. 배우자를 잃고 화병이 생길 처지에 무시당한다면 화병이 더 크게 도질지도 모른다. 사소한 일에 감정상하고 사람들과 대립할 수 있다. 정신분열 현상이 올 수도 있다. 현대인들의 정신적 문제가 여기서 보인다. 배우자를 잃은 가정, 해체된 가정, 상처받은 가정 등 수많은 가정들이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 아픔만 생각한다면 산다는 것이 지옥 같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 무시당해도 먹어야 한다. 화병을 돋울 일이 있어도 당당하게 맞서 이겨야 한다. 룻처럼 일하러 나서야 한다. 그러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환경 탓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일부터 시작하면 좋은 일을 만난다.

예화-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가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일입니다.

일본 검사는 주 목사가 80이 넘은 어머니가 아들을 타이르면 마음이 바뀌어져서 신사참배를 하게 되리라 생각하고

주기철 목사를 집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주목사가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놀라며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내 아들이 일제에 항복하고 나올 리가 없다.

네가 나의 아들이라면 발길을 돌려라".

주목사는 어머니의 말씀을 깨닫고 다시 감옥으로 갔습니다.

그것을 안 일본 검사들도 그 어머니의 신앙에 크게 놀랐습니다. -http://cafe.daum.net/yacop

2. 복을 얻게 하는 사람이 있다.

룻이 제법 풍성히 거두어 돌아왔다. 시어머니가 보기에 며느리 혼자서 이만큼 거둔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 누군가 도와주어야 가능하다. 누군가 보리 이삭을 일부러 떨어뜨려 주든지 한곳에 모아 주어야 이 정도 거둘 수 있다. 어른이라면 이 정도 눈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시어머니는 많이 거두었다고 좋아만 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도와주었는지를 며느리에게 묻는다. 결코 며느리를 의심하거나 의혹의 눈초리를 가지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도와 준 사람, 고마운 사람을 알고 싶어서이다. 나오미는 룻을 도와준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이 대답한다.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은 보아스니이다”(19). 일하러 나가면 좋은 사람을 만난다. 어떤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을 만날까 조바심을 낸다. 그러나 좋은 사람 만날 것을 기대하고 일하라. 하나님이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실 것이다. 룻이 보아스를 만났다. 보아스는 유력자 곧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결코 힘만 믿고 행세하는 사람이 아니다. 힘을 이용하여 가난한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다. 룻이 그런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일종의 행운이다. 그리고 행복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만났는가? 남편, 아내, 부모님, 시부모님을 만났다. 하나님이 그 분들을 좋은 분으로 만나게 하셨다. 그분들을 만나 행복하게 하셨다.

예화-믿음의 부자 데일 카네기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평생 100권에 가까운 책을 쓴 저술가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명성이 강철 왕 카네기 못지 않은 사람입니다.

본래 아버지가 일찍이 세상을 떠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너무 너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빵 한 조각으로 하루 세끼를 먹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잠 잘 때면 꼭 어머니가 들어와서 하시는 말씀이,

"카네기야! 하나님이 너를 돌보아 주신다" 라고 하셨습니다.

몇 번이고 그 말을 반복해서 하시면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카네기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돌보아 주신다는 말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난 속에서도 그 때마다 하나님을 힘입어 공부를 하여 유명한 저술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데일 카네기는 부모에게서 한 푼 유산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로부터 아름다운 믿음을 그대로 이어 받은 믿음의 부자였습니다. -http://cafe.daum.net/yacop

3. 룻이 기업 무를 사람을 만났다.

나오미가 보아스의 됨됨이와 지위를 대번 알아챘다. 그는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다. 보아스는 은혜를 나눌 줄 아는 됨됨이를 가졌다. 그것도 죽은 사람에게나 산 사람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일종의 결손 가정에 먹을 것을 제공했으니 죽은 자나 산 자 모두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다. 보아스 지위는 근족이요, 기업 무를 자이다. 나오미와 친척간이며, 나오미의 집을 일으켜 줄 사람이다. 나오미의 집으로서는 보아스가 구세주인 셈이다. 고난이 와도 일하는 사람, 고난 중에라도 화목을 아는 사람이 유력자를 만난다. 이미 유력자를 만날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유력자는 마음씨도 넓은 사람이다. 룻에게 추수를 마치기까지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자기 밭에서 이삭을 주우라고 한다. 이미 보아스는 일군들에게 룻을 보호하고 도울 것을 지시하였다.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을 위해 유력자로서, 기업 무를 자로서 일을 시작하였다. 혹시 우리 가족이 룻과 나오미처럼 어려움을 당하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 가족을 구해 줄 유력자를 만나라. 누구를 만나야 하는가? 천국의 기업을 회복시켜 줄 분이 과연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권능과 권세를 가지셨다. 가족이 힘을 합해 유력자를 찾으라. 부모는 자녀에게 유력자를 소개하라. 부모가 먼저 유력자를 알면 자녀도 유력자를 알기 쉽다.

예화-죠지 워싱턴의 어머니

죠지 워싱턴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집을 떠날 때,

그의 어머니는 아래와 같은 말로 아들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그래 내 아들 죠지야, 하나님의 복과 어미의 기도가 항상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일국의 대권을 어깨에 메려고 할 때, 한 어머니의 마지막 이 복과 확신의 말은

그때까지 서서히 불어 넣어 주던 하나님께 대한 경애심을 최고조로 보여 준 것이었습니다. -http://cafe.daum.net/yacop

4. 기업 무를 사람과 함께 있어라.

유력자 곧 기업 무를 자를 만났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멍하니 쳐다만 보고 제 갈 길로 가라고 내버려 둘 것인가? 그러 수 없다. 그를 붙잡아야 한다. 그와 함께 있어야 한다. 나오미가 룻에게 기업 무를 사람 곁에 있을 것을 권한다. 비록 어려운 처지에 있어도 시어머니가 지혜롭다. 역시 며느리 룻도 지혜롭다. 어머니의 말에 순종한다. 보리 추수를 마칠 때까지 다른 사람의 밭에 가지 않는다. 다른 곳에 가서 보리를 더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충분히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될 지도 모르고, 그럴 욕심도 날 것이다. 하지만 룻은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는다. 나오미의 말에 순종하여 한 길만 가고 있을 뿐이다. 룻은 고난 속에서 참 행복을 맛보고 있다. 여기 저기 기웃거려야 사람만 가벼워지고 줏대 없는 사람이라고 빈정거림이나 당할 것이다. 여성이라도 비록 어렵게 살아도 줏대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신앙의 줏대가 있어야 한다. 여기 저기 세상의 일에 기웃거리지 말자. 오직 참 유력자요, 기업을 회복시켜 주실 분인 예수님만 바라보자.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있자. 우리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하셨는데(28:20), 오히려 그분을 외면하고 다른 곳에 한 눈을 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복을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다. 부모와 자녀가 힘을 합하여 유력자와 함께 있어라. 온 가족이 예수님과 함께 하자. 이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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