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5:20-28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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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http://blog.daum.net/pyo9191/7087022
160327부활주일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고린도전서 15:20-28
제목-죽었으나 산 사람, 살았으나 죽은 사람
사람들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있다. 바울 사도도 자신은 삶과 죽음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하였다(빌 1:21-24).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한 그는 차라리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지만 아직 믿음에 서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사는 것도 유익하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무엇일까?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나 그들이나 똑같이 밥을 먹고 산다. 똑같이 직장엘 다니고 똑같이 돈도 벌고, 똑같이 자녀를 낳고 산다. 그렇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무엇일까?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부활절 아침,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성경적 해답을 찾아보자.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사람이 있다. 또 반대로 죽었지만 산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1.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은 죽었다.
"아니, 내가 두 눈을 뜨고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22절). 여기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을 것이라 하지 않고 "죽은 것 같이"라 하였다. 과거형이다. 이미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이미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선언하고 있다. 결국 사람은 한 평생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다가 그 공포의 죽음 구덩이로 빠져버린다. 평생 죽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하다가 결국 죽고 만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적들과 항상 싸움을 하고 있다. 의사들은 사람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는 질병과 악착같이 싸우고 있으며, 경찰은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범죄자와 싸운다.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승용차에 부착시키는 에어백이나 ABS브레이크 장치는 이제 보편화가 되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죽음을 막기 위하여 온 경찰 병력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죽음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결국 사람들은 지금도 수없이 죽어가고 있다. 사람들의 이런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죽음을 정복하지는 못했다. 영원히 정복될 수 없는 인류의 형벌이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육신의 죽음에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영혼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사실이다.
예화-오늘 떨어졌어도 내일 다시 할 수 있다. 부활의 주님이 도우실것이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 1809-1865)이 젊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변호사 시절 주의회 의원에 출마하였습니다. 그러나 낙방하였습니다. 다시 하원의원에 출마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낙방하였습니다. 이렇게 몇 번 낙방을 거듭하였습니다. 링컨은 철저하게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은 링컨을 보면서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저러다 링컨이 자살하는 건 아니냐?> 그러나 낙선하던 날 링컨은 머리를 말끔히 깎았습니다. 목욕도 하였습니다. 고급 음식점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자기가 자기에게 외쳤습니다. <오늘 떨어졌어도 내일 다시 할 수 있다, 부활의 주님이 도우실 것이다.> 그 때 링컨은 그 때 자기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재기할 수 없을 것 만 같은 심정이다.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 그러던 중에 그가 성경을 읽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믿고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공화당에 입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정치하였습니다. 공화당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링컨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건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사건이었습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이다.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롬 5:17)이라고 하였다. 죽음을 막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사망은 세상에서 왕 노릇 하고 있다. 그러나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매일 매일 죽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시내 곳곳이나 고속도로 입구에는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다. "어제의 교통사고"라고 쓰인 아래쪽에는 "사망0명"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 또한 뉴스를 듣거나, 신문을 보면 날마다 어디에서 누가 죽었다는 소식이 없는 날이 없다. 교통사고로 죽고, 살인사건으로 죽고, 안전사고로 죽고, 화재가 나서 죽었다는 소식이다. 어디서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소식은 절대로 찾아볼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교회 앞에 새로운 전광판을 세우자. 몇 명 죽었다는 전광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난 사람을 알리는 전광판 말이다. 이번 주일에 몇 명이 살아났다고 알려 주어야 한다. 이번 주일에 살아난 사람은 누구누구라고 밝혀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았다고 하지 않고 ‘삶을 얻으리라’ 즉 미래형을 쓰고 있다. 왜 예수를 믿는 지금도 사는 것이 죽을 맛인지 아는가? 사망이 왕 노릇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죽음이 우리를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미래는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는 순서가 있다. 첫 열매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2016년 전에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첫 열매가 왜 중요한지 아는가? 첫 열매를 보면 다음에 열리게 될 열매가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첫 열매가 단감이 열렸는데 다음해에 떫은 감이 열리겠는가? 첫 열매가 황도였다면 다음 해에도 황도가 열리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20절) 되셨다면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다음에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23절). 그렇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니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이 부활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면 그 때가 언제인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머지 사람들의 부활이 있다. 놀라지 말라. 불신자들도 부활한다. 그러나 그들의 부활은 영광의 부활이 아니라 부끄러운 부활이요 심판의 부활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그래서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다(계 20:6)고 한 것이다.
예화-부활에 관한 회교도와의 대화
해리 리머박사가 한 회교인 관리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그 회교도 관리는 대답하였다. <우리도 그 사실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책 곧 성경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회교 관리도 지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한 책 곧 코란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셨다고 믿습니다.> 또 리머 박사가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셨음을 믿습니다.> 그러자 그 회교관리 역시 대답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곧. 예언자 모하메드를 통하여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리머 박사는 다시 한번 강조해 말하였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회교 관리 역시 또 대꾸하였다. <우리는 모하메드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죽은 것을 믿습니다.> 리머 박사는 또 말하였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 들로 부터 스스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모든 그분의 말씀은 실제로 증거 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러자 회교 관리는 말하였다. <우리는 죽은 이후의 예언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http://cafe.daum.net/yacop
3. 죽은 세상에서 산 사람처럼 사는 방법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다면 죽은 세상에서 산 사람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지금까지는 사망이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다른 왕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다. 요한복음 18:33이하를 살펴보자.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물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 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그러자 예수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라”하셨다. 이게 무슨 뜻인가? 빌라도가 말한 것처럼 유대인의 왕은 아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왕이시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의 왕인가? 온 세상의 왕이시란 말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다 그 발아래 두셨다고 하였다(27절).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통치권을 주셨다는 뜻이다. 원래는 예수님이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통치권을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불가불 왕 노릇 하실 수 밖에 없다(25절). 그때부터 만물이 다 그 발아래 있지만 하나님은 예외다. 그리고 결국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난 후 예수님께서는 나라를 하나님께 바칠 것이다. 그리고 아들 자신도 하나님 밑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은 어떤 왕을 원하는가? 사망이 왕 노릇하게 하고 죽음의 통치를 받겠는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생명의 통치를 받겠는가? 죽음이 무서워 벌벌 떨며 순종하다가 영원한 사망의 길로 걷겠는가? 아니면 더 행복한 삶을 위해 주님께 순종하다가 영생의 길로 가겠는가?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 무서워 벌벌 떨면서도 사망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을 맛이라고 한다. 죽지 못해 사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과감하게 그 그늘을 벗어나 생명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지 못하고 있다. 만약 그를 거역하고 불순종 했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6절을 보자.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그렇다. 결국 사람을 그토록 오랫동안 괴롭히던 사망도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멸망당하고 말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부활의 첫 열매이시다. 우리가 그 분께 속하고, 그 분의 통치를 받고, 그분을 왕으로 모시도록 하자. 이런 생활이 지금의 자유분방한 생활보다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주님이 강림하실 때 영광의 부활에 참예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통치권을 하나님께 바칠 때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부활의 영광과 복이 모두에게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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